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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V/Show

인민루니 정대세, 참 멋진 인생선배

by :선율 2012. 6. 13.

힐링캠프의 섭외력과 이경규의 힘은 볼때마다 감탄스럽다. 

그걸 못따라오는 천박스런 자막일랑 뒤로 차치해도 좋을만큼. 

차인표편에도 큰 깨달음을 얻은데 이어 특히 정대세 선수편은 뭉클하고 많은것을 던져주는, '배우는 예능'으로서 예능 그 이상의 가치있는 결과물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일본영화 Go!가 떠올랐다. [Go]는 재일한국인을 소재로한 일본영화. 한국인 최초로 나오키상을 수상한 가네시로 가즈키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개성있는 작가로 유명한 쿠도 간쿠로가 집필했다. 일본에 거주하며 살아가는 재일한국인의 애환을 어둡지 않게, 위트있게 그려냈는데 주인공 캐릭터가 워낙 매력적이어서 애국심이 아니라 재미로 내가본 일본영화 중 최고로 꼽는 작품이기도 하다.



 정체성...

국적과 일치하지 않는 나라에 살면서 국가의 영향력이나 도움도 받을 수 없는데다가, 언어도 다르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알게모르게 차별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정통성을 이어나가기 위해 한국인학교를 다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일이지만 현실적으로 대단한일이다. 타국에서 우리나라 이름을 쓴다는 자체가 국적을 대변하는 것이기에 이름을 지키는 것조차가 버겁다. 이민 1세대야 민족정신과 정체성이 뚜렷하지만 타국에서 다른정서와 문화속에서 자라온 2,3세들에겐 점차 살아온 곳의 문화에 동화되기 쉽고 그렇기 때문에 국적변경은 계속 타국에서 살기쉽게 만드는 편한일이다. 


 정대세는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라왔고 일본어에 노출되는 환경에 직면한 상황에서 국적은 한국, 국가대표는 북한을 택했다. 일본과 한국이라는 국적과 환경의 충돌만으로도 버거운데 거기에 분단의 현실까지 끼얹었다. 일본사회에서 언제까지나 소수의 외국인으로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재일교포의 고충은 정체성에서부터 시작한다. Go!는 그 복잡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위트와 위기로 표현했고, 정대세는 교육을 통해 확립했다. 영화속 주인공 리정호와 정대세는 조총련 학교를 다녔다. 재일교포의 대다수는 일제강점기에 강제 징병·징용당한 한국인이었으므로 원래 조선이던 국적이 한국전쟁이후로 일부는 북조선으로 일부는 한국이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그들에게는 통일된 조선이 고향인 것이다. 그래서 정대세선수가 북한행을 택한것도 단지 북한에서 먼저 제의가 왔기 때문이라는 계기도 전혀 거리끼지 않았다. 분단된 현실속에 북한/남한 편가르기를 강요하는 꼴 밖에 더되겠는가. 재일교포인구에 비해 한국인학교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그조차도 조총련계고 그보다 훨씬 잘사는 남한쪽은 더 적다. 정대세 선수 말마따나 5분거리인 집근처 학교를 두고 편도 2시간 왕복 4시간이지만 일본인학교는 생각지 않았다는 데서 뭉클했다. 영화는 일본인학교에 진학하면서 같은 재일교포 친구들에게 비난받는다.


 정대세 선수 어머니의 영향으로 한국인 학교로 대학까지 나오게 된 그를 보면서 교육이 얼마나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막대한가를 느꼈다. 교육의 힘은 사고를 지배하고 언어는 소통의 장을 확대시킨다. 한국어를 노출시킬 수 있는 매체가 부족한 상태에서 일본인 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무리없이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고, 비슷한 위치의 교포친구들을 사귀면서 교포사회를 구축하고 사회에 나가서는 동창이 된다. 정대세가 일본축구명문인 대학교만 나왔더라도 지금보다 훨씬 편하게 실력향상과 성공을 거머쥘 수 있었다. 그치만 그는 어려운 길인줄 알면서도 밑바닥부터 차고 올라나가 오직 실력으로 유럽리그까지 진출했다. 






 지름길을 두고 돌아가야하는 심정이란... 그 유혹을 뿌리칠 긍정적인 자세가 아니었다면 결코 힘들었을 것이다. 북한이 월드컵진출이 수월하지 않은 팀인데도 북한의 대표팀 제의에 응했다는 자체도 계산보다는 가치를 쫓는 사람이라는 걸 확실히 알았다. 더불어 대표팀이 되고나서 소인배처럼 막무가내로 굴었던 철없던 과거를 충분히 비난받을만한 내용이고 자신을 포장하는 데 있어서는 치명적인 과오를 솔직히 드러냄으로써 반성하며 자신탓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이미 인간적으로 성숙했음이 엿보였다. 그렇기에 유럽리그에 진출해서 2부리그에 뛰었다가 이적한 1부리그 팀이 2부리그로 하락했어도 도약을 바라보는 긍정을 배웠다. 더군다나 엘리트 체육인은 왠지 스포츠 이외의 것에는 문외한일 것 같은데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미래에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공부 한다는 것에 많은 것을 느꼈다. 



 볼수록 새롭고 매력적인 정대세 선수. 

아마 한국에서 그가 국가대표로 뛰었다면 추성훈 못지 않게 광고를 찍었을지도 모르겠다.

'무지개를 보고싶다면 비를 참고 견뎌야 한다.'

참 멋진 인생선배를 만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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