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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인권위에 군림하는 가해자 인권

by :선율 2010. 6. 26.


이번에 10대 살인사건은 세간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잔인하고 엽기적이기까지 한 범행행각이었지만, 우리나라는 그 가해자의 인권을 위해 경찰관들이 옆에 붙어서 철저하게 얼굴을 가려주더라. 소년원 몇년이 그들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 핵심 가해자인 한 여자아이의 미니홈피가 공개되면서 '유학간다'고 둘러댔던 것으로 밝혀져 질타를 받았다. 

 가해자는 말이 없다. 얼굴도 없다. 이런 강력범죄에서 주변의 피해와 언론의 피해를 고스란히 당하는 건 오히려 피해자 가족이란 생각이 든다. 심지어 피해자의 이름을 딴 성폭행 사건도 있고[각주:1], 무슨 일있을 때마다 언론들은 피해자를 찾아와 그 때마다 얼굴이 팔린다. 안그래도 심난한 삶에 정신적 고통을 배가시키는 건 아무렇지 않게 남의속 뒤집는 인터뷰를 하는 언론의 무책임과 그렇게 만방에 얼굴 팔릴동안, 피해자가 고통받을 동안 피해자의 인권은 나몰라라하고 가해자 인권만 노심초사 걱정하는 인권위, 그리고 아무도 피해자가족을 보호해주지 않는 정부. 피해자 가족은 만신창이가 되고 만다.
 가해자는 순간의 스포트라이트에 얼굴만 가리면 그만이다. 이름정도 밝혀지는 것 외엔 다시 세상밖으로 나와 일반인인척 합류할 수 있다. 얼마든지. 아무도 가해자를 다시찾거나, 인터뷰하는 등의 일로 귀찮아질 일이 없다. 이름이 꺼림칙하면 개명하면 된다. 얼마나 가해자의 행복추구권까지 고려한 좋은 나라인가.

작년 공포드라마를 표방했던 '혼'에서 주인공 신류(이서진 분)는 어릴적 자신의 누이와 어머니를 같은학교 급우들이 살해했는데, 그 가해자 중 하나는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겸비한 변호사가 되어 재회한다. 일전에 같은반 급우를 때려죽여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만든 한 가해자가 꽤나 부자집 자식이어서 미성년 방패를 충분히 살려, 지금은 아주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염두해 두고 쓴 줄 알았는데, 실제 모델이 따로 있더군. 바로 [히로시 살해 사건]. 책소개와 출판사 리뷰로 사건 내용을 대신한다.



“아이가 죽은 그날, 나도 죽었다” 


1997년 일본 고베에서 14세 소년이 초등학생을 잔인하게 죽인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프로 저널리스트인 오쿠노 슈지는 이 사건을 계기로 30년 전에 있었던 유사한 사건을 알게 되었고, 당시 미성년자였던 가해자 소년의 행방과 피해자 유족을 덮친 비극을 세밀하게 추적하였다. 저자는 사건이 일어난 지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절절한 피해 가족들의 고통과 충격적인 가해자의 행방을 충격논픽션『내 아들이 죽었습니다』에 담았다.

30년이 흘러도 끝나지 않는 악몽, 히로시 가족의 이야기

30년 전 1969년 가가미 히로시는 창한 봄날 학교 근처 진달래밭에서 평소 장난치며 지내온 같은 반 A군에게 총 47군데를 칼로 난자당한 채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A군은 반성의 여지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성년자이기에 소년법에 따라 소년원으로 송치되고 3년 후 출소한 후 행방이 묘연해진다. A군은 후에 변호사로 성공하지만, 사건은 피해자의 가족들에게는 여전히 크나큰 상처로 남아 있다.

범행 당시 15세였던 히로시 사건의 A는 당시 일본 소년법 조항에 따라 형사 처벌을 받지 않았다. 이 조항으로 인해 A는 살인자라는 범죄 경력은 소년원을 출소한 시점부터 사라지고, 새로운 인생을 출발할 수 있었다. 과연 우리 사회와 법이 지키고자 하는 정의가 과연 무엇인가? 가해자의 인권을 지키는 것에 치중하여 정작 피해자의 권리엔 소홀한 것이 아닌가? 저자는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이 예비된 성인 범죄자로 방치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사회는 다시 한 번 경각심을 갖고 대안을 모색해 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 출판사 리뷰

아들이 살해당한 후, 남은 가족이 겪은 수십 년 고통의 세월, 그리고 변호사로 ‘갱생’한 살인자를 추적하다! 


1997년 일본 고베에서 14세 소년이 초등학생을 잔인하게 죽인 엽기적인 살인사건(일명 ‘사카키바라 사건’)이 일어났다. 프로저널리스트인 오쿠노 슈지는 이 사건을 계기로 30년 전에 있었던 유사한 사건을 알게 되었고, 당시 미성년자였던 가해자 소년의 행방과 피해자 유족을 덮친 비극을 세밀하게 추적하기 시작한다. 작가가 9년간 피해자의 가족과 사건 관련자들을 수십 차례 만나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극적으로 밝혀낸 가해자의 행방, 그리고 피해자 가족의 고통은 너무나도 충격적이다. 
사건이 일어난 지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피해 가족들의 고통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으며 그 고통의 참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그런데 오히려 사건 당시 가해자 소년은 ‘갱생’이라는 미명하에 가벼운 처벌만 받고 사회로 복귀했으며 완벽하게 신분을 세탁한 후 변호사로 성공한다. 실화라고 믿기 힘든 이 소설 같은 사건을 혼신의 힘으로 추적해 완성한 충격논픽션 <내 아들이 죽었습니다>를 통해 작가는 예기치못한 범죄 사건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와 그 가족원이 사회의 무관심과 망각 속에서 겪는 고통과 후유증의 심각성, 피해자의 인권은 보호하지 못하는 현행법의 문제점을 사회에 널리 알려 경종을 울린다.

“아이가 죽은 그날, 나도 죽었다” - 살인의 기억보다 더 끔찍한 남은 가족의 고통

지난 3월 22일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안양 초등생 유괴살인 사건의 현장검증이 있었다. 피의자 정모 씨의 현장검증이 시작되자, 피해학생 이혜진, 우예슬 양의 가족들은 차마 보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신문과 TV를 통해 이 장면을 보았던 수많은 국민들 또한 가슴 아파하고 안타까웠을 것이다. 사건에 국민적인 관심이 몰리자 경찰에서는 부랴부랴 구멍 뚫린 수사망에 대한 대비책을 검토하고, 앞으로 이러한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언론에서는 더 이상 이 사건을 조명하지 않았고 그렇게 이 사건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지고 있다.
그러나 곧 다가오는 5월 5일 어린이날과 매해 맞이할 딸의 생일에, 혜진? 예슬 양의 부모는 얼마나 참담한 마음이 될 것인가. 평생동안 환기되는 자식에 대한 기억으로 부모는 상처 아물지도 않은 채 끊임없이 고통을 반복하지는 않을까. 하루가 멀다하고 살인 같은 강력범죄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나와 우리 가족’은 안전하다고 여기며 피해 가족들이 겪는 고통을 타인의 고통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여기 억울하게 죽어간 우예슬?이혜진 양 가족들이 겪는 아픔을 훨씬 전부터 당하고 그 사건으로 인해 수십 년간 고통 속에 있는 한 일본인 가족이 있다.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 벌어진 사건이고, 일본 사회의 문제이긴 하나 결코 남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 것은, 가족을 잃은 슬픔이 나라와 민족을 초월한 인류 공통의 정서이기 때문이다. 이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자식을 잃고 난 후 겪는 가족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들의 상처가 잘 아물 수 있도록 지속적이며 전사회적인 관심을 쏟았으면 한다.


누구를 위한 법인가? - 가해자의 인권을 지키는 법만 있고 피해자의 권리를 지키는 법은 없다

경찰의 미흡한 대처로 인해 자녀가 목숨을 잃었다거나, 붙잡힌 범인에 대해 사법부가 가벼운 처벌을 내렸다고 느낀다면 피해자 가족은 사회 전체를 불신할 수도 있다. 급기야 정부나 제도 자체에 불만을 갖다가 반사회적인 성격으로 변하거나 이민을 결심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되는데 1999년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화재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전 국가대표 하키선수가 선수시절 받은 훈장을 정부에 반납하고 이민을 간 경우가 대표적이다.
범행 당시 15세였던 히로시 사건의 A는 당시 일본 소년법 조항에 따라 형사 처벌을 받지 않았다. 이 조항으로 인해 A는 살인자라는 범죄 경력은 소년원을 출소한 시점부터 사라지고, 새로운 인생을 출발할 수 있었다. 소년원 시절부터 ‘육법전서’를 보며 새 인생을 준비했던 A는 소년원을 나온 뒤 최고 학부에 들어가 사람들이 선망하는 변호사가 되는데 성공한다. 살해당한 가가미 히로시의 인생은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지만 살인자 A는 새 출발해서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 것이다. 그러나 15살 소년의 ‘광기’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진 피해자 가족들은 아직도 30년 전의 슬픔을 치유하지 못한 채 연금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수십 년이 흘러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면 받아주겠다는 피해자 엄마의 말에 중년이 된 A가‘뭣 때문에 내가 사과를 해야 합니까?’라고 대답하는 장면(본문 P.247 <소년 A의 잔인한 변신>중)에서 과연 우리 사회와 법이 지키고자 하는 정의가 과연 무엇인지, 누구의 인권인지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세부 조항에서 일본과 한국이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소년법 적용 연령이 10세 이상으로까지 하향 조정되고, 국선보조인제도가 도입되는 등 2008년 소년법 개정의 방향이 소년범의 인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한국에서는 이 가가미 히로시 사건이 시사하는 바가 많다. 점점 잔악무도해져가는 한국 청소년 범죄 상황을 생각할 때 과연 소년범의 인권을 강화하는 법안을 만들고 그들을 교화하는 데에만 예산을 사용하는 것이 정당한 일일까? 피해자의 인권, 피해 가족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현 사회적?법적 시스템 속에서 피해 가족의 원통함은 대체 어디서 풀어야 할까?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을 적절히 처벌하지 않고 교화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예비된 성인 범죄자로 방치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사회는 다시 한 번 경각심을 갖고 대안을 모색해 보아야 한다. 


세상의 무관심과 망각 속에서 신음하는 피해자 가족

오쿠노 슈지는 이 사건을 오랜 시간 추적하면서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피해자 가족의 파란만장한 삶에 경악했다. 특히 놀랐던 건 모녀 모두 가해자를 원망한 적이 없다고 말한 점이다. 그들이 가해자를 원망하지 않았던 것은 본래의 가족으로 되돌아가는 일에 온 정신을 쏟느라 가해자를 원망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다시 한 번 그 사건의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통감했다. 유족은 지금도 삶의 기로에 서 있다. 범죄 피해자가 입은 충격은 삼십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도 위로받지 못할 정도로 무시무시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아무 이유 없이 범죄에 휘말려 고통을 겪고 있는 가족은 결코 히로시 집안만이 아니다. 지금도 날마다 범죄 피해자가 생기고 있고, 그들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남몰래 견뎌내고 있다. 그들의 고통을 세상이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부디 많은 사람이 이 이야기를 알게 되고, 그로 인해 홀로 싸우고 있는 피해가족들의 아픔이 널리 알려지기를, 그래서 그들을 위한 지속적인 배려와 관심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저자 : 오쿠노 슈지(奧野修司)
1948년 오사카 출생. 리츠메이칸(立命學) 대학 졸업. 1978년부터 남미에서 일본계 이민자를 취재했으며 귀국 후에는 프리 저널리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저서로는 《뒤틀린 인연, 뒤바뀐 아기사건 그 17년》, 《은폐,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지메> 정보공개 전기(傳記)》, 《황태자 탄생》 등이 있다. 2006년 《나츠코 오키나와 밀무역의 여왕》으로 고단샤 논픽션 상과 오오야 소이치(大宅壯一) 논픽션 상을 동시에 수상하였다.

역자 : 서영욱
전자공학 전공. 소방시설 감리 및 점검분야 전문가. 바른번역 회원 및 전문리뷰어.


  1. 살해사건은 지명+피해자 신분+살인사건으로 명명하는 것이 발에 채일 정도로 흔하지만 문제의식이 없다. ㅇㅇ여고생살인사건(지명+피해자인적특성)이 아니라 ㅇㅇ발발이살인사건(지명+가해자인적특성) 이어야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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