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많이 달라 졌다. 한참 활동하던 1990년대나 2000년대와 현재의 라디오는 어떤 점에서 가장 큰 차이가 있나.
윤선원PD(윤선원): 내가 한참 활동하던 90년대부터 개인적으로 변화의 조짐을 느꼈다. (내가 공감하는 변화의 조짐은 아니었지만) 그 당시는 (굳이 표현하자면) '전문적인 DJ'가 사라져 가던 시절이었다. 김광한씨, 김기덕씨, 이종환씨, 배철수씨 같은 분들은 개인들의 역량만으로도 프로 하나를 너끈히 끌고 갈 수 있는 분들이었지만 청취율 경쟁이 격화되면서 이미 듣고 있는 청취자들을 재미있게 하는 것 보다는 새로운 청취자를 유인할 수 진행자가 필요했다. 지금으로 치면 아이돌 정도. 당시는 팬덤문화가 시작되던 시기이기도 했고.
개인적 역량이 있는 DJ들 보다 유명인이 DJ를 많이 하다 보니 전문 DJ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작가의 역할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남변: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총대 맸다'는 표현을 알게 되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발탁이었다. 김구라(2004년, 가요광장)와 메이비(2006년, 볼륨을 높여요)를 어떻게 인기 라디오 프로의 DJ로 발탁하게 됏나. 특히 김구라씨는 인터넷 방송에서의 독설로 반대가 많았을 것 같은데.
윤선원: 앞서 말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라디오는 역량 있는 DJ가 원맨쇼를 할 때 가장 재미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라디오 DJ를 '직업'으로 할 만한 사람들을 계속 찾았다. 그렇게 찾은 사람이 김구라, 메이비, 변기수였다. 이본은 내가 AD였을 때 이미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남변: '직업으로 DJ를 할 만한 사람'에게 필요한 건 어떤 것인가.
윤선원: 함축적 표현과 독특함이다. 김구라도, 메이비도, 변기수도 그게 있었다. 한정된 시간을 사용하는 방송의 특성상 함축적 표현으로 더 많은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그게 가능했던 사람들이었다.
뭔가를 직업으로 한다는 말은 그 직업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이 갖고 있지 않는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전문 DJ가 활동하던 시절과 달리 최근에는 상대적으로 그런 직업적 능력이나 개성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소 아쉽다.
남변: 선뜻 와 닿지 않는다. 구체적인 예를 듣고 싶다.
윤선원: 첫 눈이 오던 날이었는데 그 날도 DJ를 찾으려고 이것 저것 들어 보다가 우연히 김구라의 인터넷 방송을 들었는데 거의 대부분의 라디오에서 '첫 눈 오는 날 데이트'나 '교통정체, 안전운전'을 얘기하던 것과 달리 김구라씨는 '눈 온다, 저 눈이 다 돈이면 좋겠다'는 오프닝 멘트를 하더라. 그 표현 속에 그의 성향, 그가 처한 경제사정이 모두 함축되어 있었다. 독특하고 함축적이었다.
변: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DJ는 단순히 원고를 잘 읽는 사람이 아니라 청취자와 공감하고 청취자의 반응을 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의 얘기를 보았다. 인터뷰의 앞 부분에서 라디오를 metaverse(메타버스, 아주 간략히 '3차원의 가상세계'를 의미합니다)라고 표현했는데 설명을 좀 부탁한다.
윤선원: 원고를 안 틀리고 잘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성우나 아나운서 분야에서 더 잘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전부터 라디오 DJ는 음성을 통해 청취자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청취자의 머리 속에) 청취자가 상상하는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굳이 그걸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metaverse다.
서세원의 경우, 한창 라디오를 진행할 때 '빨간 바지를 입고 가고 있다'는 표현을 많이 사용했는데 그걸 청취자들이 재미있어 했다. 혼자 '빨간 바지가 도대체 왜 재미있을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빨간 바지'의 강렬한 인상 때문에 청취자는 머리 속에 존재하는 상상의 공간에서 빨간 바지를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
TV는 자료화면이든, 그래픽이든 그림이라는 게 없으면 방송을 못 하지만 제대로 만든 라디오 프로는 그 자체가 청취자 스스로 머리 속에서 만들어 낸 하나의 세계를 제공하면서 현실적 제약을 사라지게 한다. 화면 자체가 한계로 작용할 수 있는 TV와는 다르다. 굳이 예를 들자면 아주 재미나게 읽은 소설을 영화나 TV로 보았을 때의 실망감을 생각하면 된다. '여기가 우주라 하면 우주'다(영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의 유명한 대사입니다).
남변: 이전과 달리 상대적으로 라디오의 자리가 많이 좁아 졌다. 라디오가 부흥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윤선원: '라디오'는 기술의 단계에 따라 사용된 수단에 붙여진 이름일 뿐이다. 굳이 전통적인 의미의 '라디오'를 부활시킬 필요가 있나 싶다. 라디오의 역할, 그러니까 '대중이 즐길 거리'를 제공하면 된다. 대중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상상 속의) 공간이나 환경 같은 것.
머니투데이 | 2021.07.25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107250856001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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